부장이라고 하면 일반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직급으로 알고있다.
하지만 남산에 있던 부장들은 어느 정도 위치가 아니었다. 사실 처음 영화 제목을 보고 "남산에 있던 부장들이 어느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들일까?"라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에 남산의 부장들은 왠만한 회사 대표는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이었다.
아니, 사실 이들은 대통령 다음 가는 권력자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기 전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중앙정보부 소속 부장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리뷰한다.
장르 : 드라마, 스릴러, 정치물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 우민호
주연 :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김소진
러닝타임 : 114분
평점 : ★★★★
공식 소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한다.
이 사건의 40일전, 미국에서는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이
청문회를 통해 전 세계에 정권의 실체를 고발하며 파란을 일으킨다.
그를 막기 위해 중앙정보부장 김규평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 나서고,
대통령 주변에는 충성 세력과 반대 세력들이 뒤섞이기 시작하는데…
흔들린 충성, 그 날의 총성
남산의 부장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아니 영화는 책을 원작으로 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동명의 책이 존재하며 이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 상에서 한번도 실제 역사 속의 사람들 이름을 쓰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며 정치적인 색이 어느정도 묻어 있는 내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다르게 부른다. 대통령조차도 박통이라고만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아래 내용은 일부 스포가 포함되어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이병헌이 연기한 '김규평'이 주인공이다. 그 당시 대통령 다음가는 2인자였던 김규평은 남산에 위치한 중앙정보부의 부장이다. 그는 대통령의 곁에서 항상 최측근으로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경호실장인 곽상천(배우 이희준)이 점점 세력을 키워가며, 2인자의 자리를 넘보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와중에 과거 남산의 또 다른 부장이었던 박용각(배우 곽도원)이 미국으로 도망쳐 가서 박통(배우 이성민)의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해 폭로하고 다닌다. 심지어 이러한 사실들을 자세히 담은 책을 출판하려 한다.
이런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박통에게 김규평은 그의 원고를 빼앗아 오겠다고 한다. 그리고 박용각의 친구였던 김규평은 친분을 이용해서 그에게서 원고를 받아온다. 이 둘의 만남에서 박용각은 김규평에게 박통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2인자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 자리가 계속 될 수 없었음을 말한다.
이 와중에 곽상천이 서울 한 복판에서 전차를 출동시켜 청와대를 돌게 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위들을 하자 김규평은 곽상천과 싸움을 벌인다. 이 때 싸움을 보면 느낄 수 있지만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이미 김규평의 2인자의 자리가 상당한 위협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던 중 김규평이 박용각에게서 빼앗아 온 원고가 책으로 출간되고, 미국에 의해 청와대가 도청되는 사실 등이 밝혀지며 김규평이 점점 박통에게 신임을 잃어간다.
계속되는 박용각과 관련된 이슈로 인해, 곽상천은 부하를 이용해서 박용각을 죽이려 하지만 그 전에 김규평이 먼저 손을 써서 박용각을 제거한다. 그를 죽이기 전 김규평은 박통에게 의견을 묻지만 박통은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 임자 곁에는 내가 있잖아."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남긴다. 그리고 결국 죽이고 나서도 박통은 김규평에게 칭찬보다는 박용각에게 돌려받지 못한 돈을 이야기하며 질책을 한다.
미국 대사관은 박용각의 죽음과 관련해 김규평에게 박통의 독재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김규평은 박통의 집에 몰래 잠입해 박통과 곽상천의 술자리를 도청한다. 이 술자리에서 자신에게 했던 것과 같은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 임자 곁에는 내가 있잖아."라는 멘트를 듣게 되고, 자신이 박통에게 버려졌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김규평은 거사를 준비한다. 박통이 자신의 안가에서 최측근들을 대동한 술자리를 갖는 날에, 김규평은 자신들의 부하들을 무장시켜 데리고 간다. 그리고 사전에 계획한 일들을 부하들에게 지시한다. 이 술자리에서 김규평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직설적으로 퍼부으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곽실장과 박통을 총으로 쏴 죽인다. 이미 밖은 자신이 데려온 부하들이 정리를 한 상황이었다.
이제 벌어진 상황들을 수습하기 위해 김규평은 군을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육군참모총장을 데리고 중앙정보부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차 안에서 육군참모총장은 육군본부로 가자고 이야기 하고, 결국 고심한 끝에 김규평은 육군본부로 차를 돌린다. 이때의 결정으로 인해 김규평은 육군에게 체포되고 나중에 교수형에 쳐해진다.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전두혁(지금의 전두환)이 나와 박통의 돈과 금괴를 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상당히 디테일하고 자세한 이야기들까지 담아내며 역사의 인물들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에 전두환이 박정희의 비밀금고를 열어본 것 역시 그런 그림은 아니었겠지만 사실로 밝혀져 있다.
김재규의 대통령 암살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사에서 큰 사건이었고 이미 여러차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전후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웠다. 물론 당시 생존자들의 주관적인 진술과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져 어느정도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사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모두가 생각해 봤겠지만 과연 중정으로 그대로 향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과연 김재규는 자신이 말한 민주주의를 위한 결정을 내린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도. 그 당시 상황상 2인자의 자리가 위험했던 김재규는 언제든지 내쳐질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그런 결정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에 산 사람은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영화는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역사를 다루었다. 역사를 다룬 영화들은 대체로 장르의 특성상 지루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극의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유지시키며 마무리한다. 굉장히 짜임새 좋은 영화를 한 편 본 느낌이 든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최고다. 이제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잡은 이병헌은 장르를 넘어서는 연기를 보여준다. 일상적인 연기부터, 히어로 역할, 건달 역할, 이제 정보부 부장의 역할까지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연기에 완벽하게 몰입한 순간들이 몇 번 있었는데 곽상천이 청와대 근처에서 전차를 동원한 이후 그와 싸우는 장면에서 욕을 섞어가며 소리치는 모습. 그리고 몰래 숨어서 박통과 곽상천의 대화를 도청하는 장면에서 그의 연기는 순간의 긴장감을 온전히 전달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박통을 연기한 이성민 역시 전대통령을 완벽하게 옮겨다놓은 듯한 외모와 말투, 표정까지 연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병헌과 이성민의 연기 대결 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물론, 이희준과 곽도원 배우 역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특히 이희준 배우는 역할을 위해 살을 25kg이나 찌웠다고 들었는데, 걸음걸이마저도 굉장히 닮아 있었다.
책을 원작으로 한 시나리오도 상당한 수작이었고 배우들의 연기까지 완벽한 영화였기 때문에 보고 난 후에도 만족스러웠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민까지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김재규 미화로 인해 호불호가 굉장히 갈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마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성향이 있을 수 있다. 같은 영화지만 영화를 보고 생각하는 것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존중해야 한다. 어쨌든 영화는 500만에 못 미치는 흥행성적으로 끝났지만 그 이상의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서 모두가 한 번쯤 꼭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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